일본은 어째서 고종황제가 아닌 명성황후를 죽였을까?
- 궁금했던 것, 지나갔던 것/사회와 경제(SOCIAL)
- 2019. 5. 12. 04:30
안녕하세요 ~ NORMAL식입니다 :)
역시나 이번에도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을미사변에 대한 영상을 보는 와중에 불현듯 이런 궁금증이 떠올랐어요
"왜 일본은 고종황제가 아닌 명성황후를 시해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됬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국사시간이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을미사변과 일제강점기 부분에서
일본군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이유를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배웠는데 까먹었을 수도... ㅋ)
물론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겠지만!
만약에 일본이 고종황제를 시해했다면 일본입장에서는 더 편하게 한반도를 점령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일제침략을 긍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조사를 통해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이유를 한번 알아봤습니다:)
1. 을미사변은 어떤 사건인가?
을미사변이란 1895년(고종 32년) 10월 8일에 명성황후 민씨가 미우라 고로라는 일본공사의 주도하에 일본군 한성(한양)수비대 미야모토 다케타로등에게 시해된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이 사건의 일본의 작전 암호명은 '여우사냥' 이었습니다. 사변(事變)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천재나 그 밖의 큰사건, 또는 전쟁까지 확장되지는 않았으나, 경찰의 힘으로 막을 수 없어 무력을 사용하게 되는 난리를 뜻합니다. 즉 을미사변이란 을미년에 발생한 조선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던 큰 사건을 말합니다
2. 을미사변은 어떻게 일어나게 됬을까?
을미사변에 대한 많은 글들을 찾아보니, 명성황후는 일본제국이 조선을 침략하는 데 있어서 가장큰 걸림돌이 었다고 말합니다. 그냥 단순히 생각해보면, 당시는 100년이 훌쩍넘는 옛날이었고, 지금보다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굉장히 낮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을미사변의 진짜 배후는 일본공사인 미우라 고로보다 훨씬 더 뒤에 있는 거대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진정한 주동자는 미우라 공사 직전에 공사를 지냈던 이노우에 가오루를 비롯한 일본 내의 최고위 인사들과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내각의 각료들이었다고 합니다. 즉 흑막으로 가려졌던 을미사변의 진짜 배후는 일본 본토의 대신들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통사 등에 따르면 을미사변이 있기 한달 전 이토 히로부미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던 이노우에 가오루는 조선에 빌려주기로 했던 차관(돈)이 일본정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무라라는 여자를 명성황후의 양녀로 삼게하여 후에 있을 '여우사냥'작전중에 민씨의 신원을 확인하게끔 밑작업을 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을미사변후 명성황후를 살해한 이후 이 모든 사건의 주동자를 흥선대원군과 조선인 훈련대에게 덮어씌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치밀한 작전을 세워가면서 까지, 일본의 최고위층이 명성황후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장기나 체스처럼 왕만 죽이면 끝나는게 아니었을까요?
3. 일본은 왜 명성황후를 죽인 것일까?
일본이 왜 명성황후를 시해했는지 알려면 먼저 명성황후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명성황후는 살아계실때는 왕비, 왕후로 불렸으며, 사후에 황후라는 자리로 올려졌다고 합니다. 시대가 조선인만큼, 명성황후의 영향력을 알기 위해서는 집안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씨의 아버지는 전라도, 충청도, 평안도의 관찰사를 역임하고 우승지, 대사성까지 역임한 조선의 최고위층 인사였습니다. 또한 조선은 노론과 서론이라는 두개의 학파로 권력이 양분되었는데 민씨의 부친인 민유중은 조선후기 정권을 장악했던 노론의 인사였습니다. 즉 민씨의 집안은 조선말 가장 강력했던 흥선대원군의 세력과 견줄 수 있는 세도정치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민씨는 당시 정부의 라이벌이었던 고종의 아버지인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을 견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민씨의 집안과 흥선대원군의 세력이 조선의 가장 큰 세력들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세력이 강해지면 다른한쪽은 철저하게 배척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민씨는 민씨의 집안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흥선대원군을 철저하게 견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흥선대원군 또한 마찬가지였죠.
여기서 아주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이라는 인물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쇄국정책'이라는 정책을 고수 했던 흥선대원군에 민씨가 대항하려면, 반대로 민씨는 개화정책을 주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국가 대신들의 회의장인 편전에 명성황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편전의 반절은 민씨일가, 그리고 반절은 흥선대원군의 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민씨가 대한제국의 정책에 가하는 영향력은 생각이상으로 강력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민씨는 개화정책을 주장하는 동시에 일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청나라와 손을 잡습니다. 그러나 청나라가 청일전쟁으로 일본에게 패하자, 민씨는 러시아를 끌어들입니다. 즉 일본의 입장에서는 본인을 견제하는 가장 큰 인물이 민씨였던 것입니다. 슬프지만, 쉽게 비유를 하자면, 호랑이가 닭장안에 있는 닭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닭장을 지키는 사람이 늑대와 곰을 풀어 닭장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죠. 그러니 호랑이의 입장에서는 늑대나 곰을 죽이는 것보다 사람을 먼저 죽이는게 닭들을 잡아먹기 쉬울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3. 일본은 왜 고종이 아닌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일까?
자, 이제 어느정도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만일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지 않고 고종을 시해했더라면, 조선의 혼란을 야기하여 한반도를 정복을 했을 수 있겠지만, 명성황후가 등에 업고 있는 러시아라는 큰 세력이 한반도에 손을 뻗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종이 시해당한 상태의 혼란한 정부는 일본이 완전히 국가를 병합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서 러시아와 일본에 패하긴 했지만, 남은 청나라 군대를 한반도에 끌어들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은 청,러 세력과 전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등의 당시 제국주의국가들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개입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입장에서는 한반도를 온전히 장악하는데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1800년대 후반에는 국제적인 교류들이 이뤄지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서강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와 인도를 식민지화 하고 아시아로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했던 때이기도 하죠. 때문에 일본입장에서 한나라의 원수를 살해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표면상 도덕적인 이유를 들어 일본을 비난하며 한반도에 세력을 뻗을 수 있는 여지로써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 헤이그로 특사를 파견하는등 대한제국을 위해 물밑으로 수많은 외교로비작업을 하셨다는 것을 기록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입장에서 고종을 시해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는 가장 큰 위험부담인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것이 그들의 야욕을 실현시키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NORMAL식의 전공은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저의 포스팅이 완전히 정확하진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역사라는 것에 '만약에'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거의 사건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발생한 사건에 대한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이
스스로에게 큰 공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역사에 관련된 포스팅을 하는 것도 굉장히 저에게 많은 공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이런 치욕적이고 슬픈일이 다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책임감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포스팅이었습니다.
NORMAL식은 여기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다음 포스팅에서 새로운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
그럼 모두 좋은 밤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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